ENJOY YOUR TIME
태평성시도와 내 마음에 정직한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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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촘촘한 지붕 사이에서 저마다의 하루가 이어집니다. |
회색 기와지붕 사이로 길이 이어집니다. 붉은 기둥이 받치는 건물 안에는 사람들이 마주 앉아 있고, 길 위로는 말을 탄 사람과 걸어가는 사람이 뒤섞여 있습니다.
화면 가운데에는 녹색 지붕을 여러 겹 올린 문 모양의 건축물이 서 있습니다. 그 아래로 시선을 옮기면 또 다른 사람과 수레, 낮은 지붕이 나타납니다. 위쪽의 나무 사이에는 사람들이 모인 작은 공간도 보입니다.
처음에는 건물이 빽빽한 도시가 보이지만, 조금 더 들여다보면 각자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한 사람의 자세에서 다른 사람의 손으로 시선이 옮겨갈 때마다 그림 속 하루가 조금씩 넓어집니다.
여러 사람의 시간이 만나는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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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평성시도〉 8폭 병풍 중 한 폭. 비단에 수묵채색,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덕수 4481. |
이 장면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태평성시도〉의 일부입니다. 공식 소장품 기록에서는 〈도시 풍경〉이라는 이름으로도 소개합니다.
작품은 여덟 폭의 장면이 연결되는 병풍입니다. 이번에 소개하는 세로로 긴 이미지는 그중 한 폭으로, 병풍 전체의 일부를 보여줍니다.
제작자는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2024년 소개한 연구에서는 제작 시기를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로 보고, 김홍도와 그 영향권에 있던 화가들의 제작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작가 미상의 조선 후기 회화로 소개합니다.
〈태평성시도〉에는 중국적인 건축과 복식, 조선의 풍속과 기물이 함께 나타납니다. 박물관은 이를 조선 사회가 바랐던 이상적인 도시의 모습으로 설명합니다. 특정 도시의 어느 하루를 그대로 기록한 그림으로 읽기에는 조심스러운 이유입니다.
이런 배경을 알고 다시 보면, 화면을 채운 사람들이 조금 다르게 다가옵니다. 풍요로운 도시를 상상하는 데에는 크고 아름다운 건물뿐 아니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도 필요했던 것입니다.
작은 동작에 머무는 시선
확대한 이미지에서는 건물 안쪽이 잘 보입니다. 사람들은 탁자 가까이에 앉아 있거나 몸을 돌려 서로를 향합니다. 길가에 서 있는 사람과 말을 타고 지나가는 사람의 자세도 다릅니다.
작은 얼굴만으로 그들이 어떤 마음인지 알 수는 없습니다. 즐거운지, 지쳤는지,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도 그림 밖의 우리가 모두 알지는 못합니다.
다만 서로 다른 동작이 한 화면에 함께 있다는 사실은 보입니다. 누군가는 이동하고 누군가는 머뭅니다. 길을 지나가는 사람 곁에서도 건물 안의 일은 계속됩니다.
그 모습을 따라가다 보면, 내 하루를 이루는 작은 장면도 떠오릅니다. 일을 마친 뒤 건넨 짧은 이야기, 잠시 창밖을 바라본 시간, 서두르느라 제대로 느끼지 못한 한 끼의 온기 같은 것들입니다.
멀리서 보면 비슷해 보이는 하루도 가까이 들여다보면 다른 표정을 갖습니다.
지금의 시간을 어떻게 살고 있는가
이미지 아래에는 짧은 문장이 놓여 있습니다.
ENJOY YOUR TIME.
당신의 시간을 누리라는 말입니다. 이 문장은 이번 이미지에 더한 현대의 문구입니다. 작품의 원래 제명이나 제작 의도를 설명하는 문장은 아닙니다.
분주한 거리 위에서 이 말을 읽으면, 즐거움도 일정처럼 채워 넣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됩니다. 다녀온 장소가 많고 해낸 일이 많은 하루에도 정작 내 마음은 어디에 있었는지 선뜻 답하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그림 앞에서는 다음 질문을 조금 오래 붙들고 싶습니다.
나는 지금 이 시간을 정말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살고 있는가.
내가 원하는 삶에는 활기찬 만남이 들어갈 수도 있고, 누구와도 약속하지 않은 조용한 저녁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오래 궁금했던 곳을 찾아가는 날과 익숙한 길을 천천히 걷는 날이 모두 소중할 수 있습니다.
어떤 하루가 더 좋아 보이는지 판단하기 전에, 오늘의 내 마음이 어디를 향하는지 살펴보는 것입니다.
자신의 마음을 정직하게 보는 힘
마음에 정직해지는 일은 때때로 작은 인정에서 시작됩니다.
좋다고 말해왔지만 사실은 버거웠던 일, 시간이 없다는 말 뒤로 자꾸 미뤄둔 관심, 쉬고 싶으면서도 빈 시간이 불안해 약속을 잡았던 저녁을 알아차리는 일입니다.
알아차렸다고 해서 당장 하루를 전부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맡은 일과 돌봐야 할 관계가 있고, 원하는 대로 정하기 어려운 시간도 있습니다.
그 안에서도 내가 고를 수 있는 작은 자리를 찾아볼 수는 있습니다. 짧은 산책을 남겨두거나, 반가운 사람의 이야기를 조금 더 듣거나, 미뤄둔 책을 몇 쪽 펼치는 자리입니다.
그 선택이 내게 필요한 것인지 묻고 실제로 시간을 내어주는 데서, 마음과 하루의 거리가 조금 좁혀질 수 있습니다.
그림 속 거리에서 내 하루로
다시 그림을 바라봅니다. 지붕과 길이 촘촘하게 이어진 화면에서 이번에는 큰 건물보다 그 아래의 작은 사람에게 시선이 머뭅니다.
모두의 얼굴을 자세히 볼 수는 없어도, 그림 속 도시가 수많은 작은 동작으로 채워져 있다는 것은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의 하루에도 멀리서 보면 지나치기 쉬운 시간이 있을 것입니다.
시간을 아끼느라 삶까지 아낄 필요는 없습니다.
한 번 더 바라보고 싶은 풍경 앞에 머무는 일, 좋아하는 마음을 말로 건네는 일, 오늘은 조용히 쉬고 싶다는 마음을 받아들이는 일에도 시간을 내어줄 수 있습니다.
ENJOY YOUR TIME.
오늘의 어느 작은 장면에는 내 마음도 함께 머물렀으면 좋겠습니다.
Object Information
Title: Painting of the City of Supreme Peace
Korean title: 〈도시 풍경〉, 다른 명칭 〈태평성시도〉(太平城市圖)
Artist: Unidentified artist
Period: Joseon dynasty
Date: Late 18th–early 19th century, as proposed in research introduced by the museum in 2024
Medium: Ink and color on silk
Format: Eight-panel folding screen
Dimensions: 113.6 × 49.1 cm (H × W, each panel)
Collection: National Museum of Korea
Accession number: Duksu 4481
영문명과 각 폭의 크기는 국립중앙박물관 영문 소장품 기록, 재질과 기법은 박물관 제공 Google Arts & Culture 자료를 따랐습니다. 제작 시기는 박물관이 2024년 소개한 연구의 추정입니다.
Image Credit
National Museum of Korea
KOGL Type 1 — Attribution
Image 1: A cropped detail with added text and account signature.
Image 2: One panel from the eight-panel screen, presented with gray side margins and an added account signature.
View the official National Museum of Korea record

